병원 400곳에 전화한 아버지, 처방 마약류 중복처방의 민낯
아들의 향정신성의약품 중독을 막으려 병원 400여 곳에 전화한 아버지. 중복처방을 걸러내지 못하는 확인 시스템과 2027년 DUR 의무화까지 남은 공백을 짚었다.
아버지는 왜 아들 대신 병원 400곳에 전화를 걸어야 했나?
25살 아들이 향정신성의약품에 중독되자 아버지는 아들이 다녀갔을 법한 병원을 하나씩 찾아 전화를 돌렸다. 3년 넘게 이어진 통화 건수는 400곳을 넘겼다. 아들은 정신건강의학과뿐 아니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내과, 심지어 산부인과에서도 약을 받아냈다. 의사와 약사가 환자의 마약류 처방 이력을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은 이미 있었지만, 조회는 의무가 아니었다.

목차
처방전 한 장은 어떻게 중독의 통로가 되나?
경향신문 연재 <끊는 사람들> 2편에 등장하는 영재(가명)는 10대 후반 해외 유학 중 약을 접했다. 귀국 뒤에는 ADHD와 우울증, 불안장애, 강박장애 진단을 근거로 병원을 돌며 처방전을 모았다. 그가 복용한 약은 알프라졸람, 디아제팜, 로라제팜 같은 벤조디아제핀 계열이다. 불안과 불면을 다스리는 데 쓰이지만 의존과 남용 위험이 함께 따라붙는 약물이다.
문제는 약을 얻는 경로가 지나치게 넓었다는 점이다. 집 근처 의원에서 시작된 처방 여정은 서울 전역과 경기도로 번졌고, 대구에서는 비대면 진료로도 약을 받았다. 불안이나 불면을 호소하는 성인 환자에게 의사가 처방전을 건네는 것은 진료 재량의 영역이다. 아버지가 미리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해도, 그것은 참고사항 이상이 되지 못했다.
A 25-year-old man in Seoul obtained benzodiazepine prescriptions from dozens of clinics across specialties, exposing how easily South Korea's prescription system can be navigated by a patient in active addiction.
조회할 수 있는데 왜 확인하지 않았나?
핵심은 확인의 권한은 있었으나 의무는 없었다는 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1년부터 '마약류 의료쇼핑 방지 정보망'을 운영해 의사가 처방 전 환자의 최근 1년치 투약내역을 조회할 수 있도록 했다. 조회 결과 오남용이 우려되면 처방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회 자체가 강제되지 않으니 상당수 현장에서는 그 단계가 생략됐다.
그 틈에서 벌어진 일이 중복처방이다. 14일치 약을 받고 사흘 만에 같은 계열 약 14일치를 또 타내고, 며칠 뒤 다시 처방전이 발행되는 기록이 아버지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확보한 3년치 자료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약을 잃어버렸다"는 환자의 말이 통했다. 서울 강남의 한 정신건강의학과는 환자가 입원했다는 사실을 알린 뒤에도 처방 정보 제공을 거부했고, 아버지의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아버지는 요주의 병원을 식약처와 관할 보건소에 신고했고, 어떤 병원에는 직접 찾아가 경찰을 부르기도 했다. 20곳 중 1곳 정도가 처방을 멈췄다. "10번 나갈 처방이 8~9번으로 줄어드는 효과는 있지 않았을까요." 그가 3년간의 싸움에 매긴 평가다. 집 한 채 값이 그 사이 사라졌다.
Korea's prescription-history database has existed since 2021, but checking it was optional — so duplicate prescriptions kept flowing, and one father spent three years and a house's worth of money doing the system's job himself.
숫자로 보면 문제는 얼마나 큰가?
식약처와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은 환자는 2,020만 명으로 집계됐다. 국민 10명 중 4명꼴이며, 2년 연속 2,000만 명을 넘었다. 처방 건수는 약 1억 건, 처방량은 19억 5,724만 개다. ADHD 치료제 처방 환자는 39만 2,000명으로 전년보다 16.2% 늘었다.
감시망에 걸린 이상 징후도 적지 않다. 식약처가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자료로 7종 성분의 처방 정보를 분석한 결과, 조치기준을 벗어나 처방한 의사 3,923명에게 서면 통지가 나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6 국정감사 이슈 분석>에서 마약류 처방 관행과 감시 부실을 쟁점으로 지목하며 실시간 모니터링 의무화를 제안했다.
치료 쪽 사정은 더 열악하다.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의 지정 병상은 2023년 3월 360개에서 올해 3월 343개로 오히려 줄었다. 국가가 지정한 병원 32곳 가운데 14곳은 지난해 치료 실적이 0건이었다. 정부는 내년도 마약류 중독 치료·회복 예산을 38% 늘린 134억 원으로 편성했지만, 병상과 인력이 함께 늘지 않으면 예산만으로 메우기 어려운 구조다.
Some 20.2 million people — roughly four in ten Koreans — were prescribed controlled medicines last year, while designated addiction-treatment beds fell to 343 and 14 of 32 state-designated hospitals treated no one at all.
2027년 8월까지 남은 공백은 무엇인가?
지난달 20일 국회는 약사가 마약·향정신성의약품을 조제할 때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로 환자의 기존 투약 정보를 확인하도록 의무화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당한 사유 없이 확인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10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만 시행일은 2027년 8월 20일이다.
의사 쪽 규제도 단계적으로 조여지고 있다. 투약내역 확인 대상 성분은 2024년 6월 펜타닐을 시작으로 지난해 6월 ADHD 치료제(메틸페니데이트), 지난해 12월 식욕억제제, 올해 6월 졸피뎀, 그리고 최근 프로포폴까지 확대됐다. 문제는 영재가 삼킨 벤조디아제핀 계열이 이 목록의 우선순위에서 여전히 뒤에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주 단위 처방약 모니터링 프로그램(PDMP)을 운영하며, 켄터키·테네시·뉴욕·오하이오처럼 처방 전 조회를 의무화한 주에서는 오피오이드 처방량과 '닥터 쇼핑'이 함께 줄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조회할 수 있게 하는 것과 조회하게 만드는 것 사이의 간격이 결과를 갈랐다는 뜻이다. 한국이 그 간격을 좁히는 데 필요한 시간은 앞으로 약 1년 11개월 더 남아 있다.
A revised Pharmaceutical Affairs Act now requires pharmacists to check prescription histories for controlled substances — but only from August 2027, leaving nearly two years of the same gap that US states closed by making database checks manda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