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에너지머티, AI 회로박 추가 증설…데이터센터 공급난 정조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1만6000톤 회로박 생산능력에 더해 AI 데이터센터용 고부가 회로박 추가 증설을 검토한다. 고객사 요청과 구조적 공급 부족이 배경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왜 AI 회로박 증설에 나섰나?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익산공장 회로박 생산 능력을 1만6000톤까지 끌어올리는 데 이어, AI 데이터센터용 고부가 회로박의 추가 증설 검토에 들어갔다. 배터리 동박으로 성장한 이 회사가 무게중심을 인공지능 소재로 옮기는 승부수다. 고객사의 적극적인 요청과 구조적인 공급 부족이 맞물린 결정으로, 전기차 캐즘에 시달리던 동박업계가 AI를 새 성장축으로 삼는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목차
회로박이란 무엇이고 왜 지금 주목받나?
회로박은 인쇄회로기판(PCB)에 얇게 입히는 고사양 동박으로, AI 가속기와 고성능 서버에서 데이터 전송 손실을 최소화하는 핵심 소재다. AI 데이터센터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고속·대용량 신호를 견디는 기판 수요가 급증했고, 이를 감당할 회로박 물량이 세계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김연섭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대표는 지난 9일 여의도에서 열린 'CEO IR DAY'에서 이런 시장 흐름을 근거로 추가 증설 검토 사실을 공개했다.
Circuit foil is a high-spec copper material that minimizes signal loss in AI accelerators and servers, and surging data-center demand has created a global shortage.
고객사는 왜 추가 증설을 요구했나?
김 대표는 "고객사의 적극적 요구로 회로박 1만6000톤 생산 능력에 더해 극박 투자를 포함한 고성능 회로박 추가 증설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초극저조도(HVLP) 동박과 반도체 패키징용 극박은 기술 진입 장벽이 높아 세계에서 소수 업체만 공급할 수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솔루스첨단소재가 회로박 사업을 매각하면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이 사업을 영위하는 유일한 기업으로 남았다. 빅테크의 차세대 AI 가속기용 제품 승인을 이미 확보한 점도 고객사가 증설을 재촉하는 배경이다.
Big-tech customers are pushing for more capacity because HVLP foil is made by only a handful of firms worldwide, and Lotte is now Korea's sole producer.
숫자로 본 증설 계획과 시장 규모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익산공장을 회로박 라인으로 100% 전환해 국내 생산 능력을 기존 대비 4배로 확대하기로 하고 490억원을 투입한다. 회로박 생산 능력은 올해 3700톤에서 6700톤으로 늘어나고, 내년 상반기에는 1만6000톤까지 확대된다. 데이터센터용 회로박 판매량만 놓고 보면 지난해 2500톤에서 올해 5000톤으로 두 배가 될 전망이다. 세계적으로 AI용 회로박을 만들 수 있는 업체는 5곳 안팎에 불과하지만, 글로벌 수요는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26%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Capacity rises from 3,700 to 16,000 tons by early next year, while global AI foil demand is forecast to grow 26% annually through 2030.
동박업계 판도는 어떻게 바뀔까?
전기차 수요 둔화로 어려움을 겪던 동박 3사는 저마다 AI와 ESS로 방향을 틀고 있다. SKC의 SK넥실리스는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동박에 집중하며 판매량을 크게 늘렸고,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AI 회로박 비중을 키우는 전략으로 차별화한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배터리 동박도 6마이크로미터 초박막과 고강도·고연신 하이브리드 제품으로 재편해 북미 ESS 시장 표준화를 노린다. 회로박 승부수가 성공하면 내년 흑자 전환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증권가에서도 데이터센터용 회로박 판매 증가를 근거로 목표주가를 잇따라 올리며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Facing an EV slowdown, Korea's copper-foil trio is pivoting to AI and ESS, with Lotte betting that circuit foil can drive a return to profit next year.
배터리 회사의 회로박 전환, 어떻게 봐야 하나?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이번 결정은 단순한 설비 증설 뉴스로 읽히지 않는다. 전기차 배터리 소재 기업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시 짜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기 때문이다. 회사가 익산공장을 회로박 라인으로 100% 전환한다는 대목은 상징적이다. 전지박에서 회로박으로 라인을 바꾼다는 것은, 성장이 멈춘 전기차 시장에 머물지 않고 AI 데이터센터라는 확실한 수요처로 생산의 축을 옮기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캐즘이라 불리는 전기차 수요 둔화가 길어지는 국면에서, 기존 자산을 그대로 두고 새 시장으로 재배치하는 전략은 현실적인 생존법이자 공격적인 베팅이다.
특히 눈여겨볼 지점은 '고객사의 적극적 요구'라는 표현이다. 통상 소재 기업의 증설은 수요 예측에 기대어 선제적으로 이뤄지지만, 이번에는 빅테크로 대표되는 고객사가 먼저 물량을 요청했다는 점에서 수요의 실체가 훨씬 단단해 보인다. AI 가속기와 서버에 들어가는 고사양 회로박은 세계적으로 다섯 곳 안팎만 만들 수 있는 희소한 시장이다. 진입 장벽이 높다는 것은 곧 한번 승인을 받으면 오래 공급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국내 유일 회로박 기업이라는 위치에 서게 된 것도, 경쟁이 치열한 배터리 동박과 달리 회로박에서는 협상력을 쥘 여지가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다만 검토 단계라는 신중한 표현도 함께 읽어야 한다. 1만6000톤 증설은 확정됐지만 추가 증설은 아직 결정 전이다. AI 붐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투입 자본 대비 수익이 언제 실현될지는 여전히 변수다. 그럼에도 이 회사가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배터리로 쌓은 동박 기술을 AI 시대의 소재로 다시 쓰겠다는 것, 그리고 그 전환의 속도를 고객이 재촉하고 있다는 것이다.
Lotte's move is less a routine expansion than a redefinition of a battery-materials firm reorienting itself toward AI, with big-tech customers themselves driving the urg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