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내년 반도체 수요 60% 급증…증설이 생명줄"
최태원 SK 회장이 내년 메모리 수요가 최소 50~60% 늘지만 공급 증가분은 거의 없다며, 호남·미국 등 가능한 모든 곳에 팹을 짓는 속도전이 한국 반도체의 생명줄이라고 강조했다.
최태원 회장은 왜 내년 메모리 시장을 "아비규환"이라 표현했나?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내년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올해보다 최소 50~60%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AI 분야만 떼어놓고 보면 증가 폭이 60~100%에 달한다는 관측도 내놨다. 반면 공급 증가분은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메모리를 확보하려는 글로벌 로비와 압력이 몰려드는 상황을 그는 "아비규환"이라는 단어로 요약했다. 해법은 하나, 지을 수 있는 모든 곳에 최대한 빨리 팹을 세우는 속도전이다.

목차
이 발언은 어떤 자리에서 나왔나?
최 회장은 지난 17일 제주 서귀포시에서 열린 제49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을 계기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한국경제의 AI 성장을 위한 아젠다'를 주제로 대담한 뒤 메모리 수급 전망을 상세히 풀어놨다. 대한상의 회장이자 세계 2위 메모리 기업의 총수라는 두 직함이 겹치는 자리인 만큼, 발언은 개별 기업의 사업 계획을 넘어 한국 산업 전반의 방향 제시로 읽혔다. 실제로 그가 언급한 호남 팹과 대미 투자는 정부가 추진 중인 3대 메가프로젝트와 직결된 사안이다.
Chey made the remarks at a press briefing tied to the 49th Korea Chamber of Commerce Jeju Forum on July 17. Wearing both the KCCI chairman and SK Group chairman hats, his comments read as an industry-wide signal rather than a single company's plan.
수요는 폭증하는데 공급은 왜 늘지 못하나?
메모리 업계의 증설 투자는 대부분 HBM과 첨단 공정에 쏠려 있다. 웨이퍼 투입량 자체가 늘지 않는 상태에서 HBM이 D램 생산능력을 잠식하다 보니, 범용 D램 물량은 오히려 줄어드는 구조다. 팹 한 기를 짓고 양산에 도달하기까지 통상 3년 안팎이 걸린다는 점도 공급 탄력성을 떨어뜨린다. 최 회장이 "내년에 늘어나는 공급량이 거의 없는 정도"라고 표현한 배경이다. 그 결과 메모리 부족은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각국 정부가 개입하는 국가 안보 사안으로 번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Most capacity investment is concentrated in HBM and advanced nodes, so commodity DRAM supply is being squeezed rather than expanded. With fabs taking roughly three years to reach mass production, Chey sees almost no meaningful supply growth next year.
숫자로 보면 격차는 얼마나 벌어지나?
최 회장이 제시한 수치는 AI 수요 60~100% 증가, 전체 반도체 수요 50~60% 증가다. 시장 전망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 씨티는 2026년 평균 D램 가격 상승률 전망을 기존 53%에서 88%로 올렸고, 서버용 D램은 전년 대비 144% 급등할 것으로 봤다. SK하이닉스는 HBM과 D램, 낸드 전 제품의 2026년 물량이 이미 완판된 상태다. 투자 규모도 자릿수가 다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팹 4기를 짓기로 하고 총 800조원을 배정했으며, SK는 별도로 AI 데이터센터에 1000조원을 투입한다. 이 시설들이 요구하는 전력은 2040년까지 약 27.7GW, 한국형 원전 APR1400 기준 20기분에 해당한다.
Citi lifted its 2026 average DRAM price forecast from 53% to 88%, with server DRAM seen jumping 144%. Samsung and SK hynix have earmarked 800 trillion won for four Honam fabs, while SK plans another 1,000 trillion won for AI data centers.
증설이 슈퍼사이클을 앞당겨 끝내지는 않을까?
가격 하락을 우려하는 시각에 최 회장은 정반대 논리로 답했다. 지금 가격이 비정상이며 떨어져야 정상이라는 것이다. 칩플레이션이 더 심화되면 결국 산업 전체가 타격을 입는 만큼, 공급을 늘려 가격을 낮추는 편이 시장을 지키는 길이라는 판단이다. 그는 공급 확대가 곧 수익성 악화를 뜻하지는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병목은 메모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최 회장은 다음 순서로 에너지와 전력장비를 지목했고, 이어 소재와 건설에서도 공급 부족이 나타날 것으로 봤다. 전선과 해저케이블 가격이 이미 들썩인다는 언급이 그 근거다. 1000조원 규모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최소 5년에서 최장 15년짜리 장기 계약이 전제돼야 착수가 성립한다며, 고객과 자금 조달 모두 문제없다고 자신했다.
Chey argued current memory prices are abnormal and should come down, saying deeper chipflation would ultimately hurt the whole industry. He expects the next bottlenecks to hit energy, power equipment, materials and construction.
이 발언을 기업 총수의 낙관론으로만 읽어도 될까?
최 회장의 발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수요 전망이 아니라 가격에 대한 태도다. 메모리 슈퍼사이클의 최대 수혜자가 될 위치에 있는 인물이 "지금 가격은 비정상이며 떨어져야 한다"고 말한 것은 통상의 이해관계와 어긋나 보인다. 그러나 이 발언은 오히려 현재 국면의 위험을 정확히 짚은 것에 가깝다. 가격이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고 희소성 프리미엄만으로 치솟을 때, 고객사는 대체 설계와 재고 축소로 대응하고 결국 수요 자체가 파괴된다. 2018년 D램 호황이 이듬해 급락으로 뒤집힌 경험이 업계에 남긴 학습이다. 물량을 늘려 가격을 낮추면서도 이익을 지킬 수 있다는 그의 계산은, 수요 곡선이 충분히 두터워졌다는 판단 위에서만 성립한다.
더 무거운 쟁점은 속도와 리스크의 교환이다. 호남에 800조원, 데이터센터에 1000조원이라는 숫자는 한국 경제의 연간 총생산을 훌쩍 넘는 규모다. 이 투자가 회수되려면 AI 수요가 최소 10년 이상 지금의 궤적을 유지해야 한다. 최 회장 본인도 "인프라를 만드는 데 돈만 들어가고 아웃풋은 안 나오는" 단계라고 인정했다. 지금의 AI를 네 살짜리에 비유한 것 역시 성장 가능성과 미성숙을 동시에 말한 표현으로 읽힌다. 팹 건설이 3년, 회수가 10년인 사업에서 수요 예측이 2년만 어긋나도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전력 문제는 이 계산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2040년까지 27.7GW, 원전 20기분의 발전설비를 새로 확보해야 한다는 추정은 반도체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에너지 정책의 문제다. 팹은 3년이면 짓지만 원전은 인허가부터 준공까지 10년 이상 걸린다. 송전망 건설을 둘러싼 지역 갈등은 이미 여러 차례 사업 일정을 뒤로 밀어냈다. 최 회장이 병목의 다음 순서로 에너지와 전력장비, 소재와 건설을 지목한 것은 자기 산업 바깥으로 시선을 돌린 발언이자, 반도체 혼자서는 이 사이클을 완주할 수 없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대미 투자 언급을 "전혀 신기하지 않다"고 흘려보낸 대목도 되짚어볼 만하다. 미국의 요구를 일상적 압박으로 규정하면서도 미국 팹 건설 가능성은 열어뒀다. 국내 생산 집중이 통상 리스크를 키우고, 해외 분산이 기술 유출과 국내 고용 축소 우려를 낳는 구도에서 어느 쪽도 완결된 답이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그가 말한 생명줄은 특정 입지가 아니라 선택을 미루지 않는 결정 속도 자체였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Chey's call for lower memory prices runs against his own short-term interest, suggesting he sees demand destruction as the bigger risk. The harder question is whether power infrastructure, which takes far longer to build than fabs, can keep pace with the investment time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