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테라파워, 나트륨 SMR 동맹…K-원전 뜬다
SK이노베이션이 테라파워와 나트륨 SMR 사업협력 합의서를 체결했다. 미국 케머러 실증로 참여를 확대하고 K-나트륨 사업모델로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정조준한다.
SK이노베이션은 왜 빌 게이츠의 원전에 다시 베팅했나?
SK이노베이션이 8월 14일 미국 테라파워와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나트륨'의 사업협력 주요 조건 합의서를 체결했다. 미국 실증로와 후속 상용 프로젝트 참여를 확대하고, 국내에는 한국형 'K-나트륨' 사업모델을 구체화한다는 계획이다. 추형욱 SK이노베이션 대표와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CEO가 직접 서명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빌 게이츠 테라파워 이사회 의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AI 데이터센터가 몰고 온 전력 수요 폭증이 배경에 있다.

목차
SK와 테라파워의 인연은 언제 시작됐나?
SK와 테라파워의 관계는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SK㈜와 SK이노베이션은 테라파워에 총 2억5000만달러를 공동 투자하며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빌 게이츠가 2008년 설립한 테라파워는 4세대 원자로로 불리는 소듐냉각고속로(SFR)를 개발해온 미국의 차세대 원전 기업이다. 이번 합의는 단순 지분 투자에서 실제 사업 참여로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다. 양사는 국내 SMR 공급망 활용과 아시아 시장 공동 진출까지 논의 테이블에 올렸다.
SK first invested $250 million in TerraPower in 2022 to become a second-largest shareholder, and this agreement upgrades that stake into active project participation.
'나트륨' 원자로는 무엇이 다른가?
나트륨 SMR의 핵심은 원자로에 '배터리'를 결합했다는 점이다. 소듐(나트륨)을 냉각재로 쓰는 고속로에 용융염 열에너지저장시스템(TES)을 붙여, 원자로는 90% 이상 가동률로 계속 돌리면서 전력 수요에 따라 출력을 조절한다. 기본 출력은 345MWe지만 수요가 몰리는 시간대에는 몇 시간 동안 500MW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발전과 터빈 운전을 분리한 이 구조가 전력 사용량이 들쭉날쭉한 AI 데이터센터에 특히 잘 맞는다는 평가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사업에서 확보한 설계·건설·운영 경험을 국내와 글로벌 사업에 이식하겠다는 구상이다.
Natrium pairs a sodium-cooled fast reactor with molten-salt heat storage, running the reactor at over 90% capacity while flexing output from 345MWe up to 500MW to match volatile AI data-center demand.
미국 케머러 프로젝트는 어디까지 왔나?
테라파워의 첫 상용로인 와이오밍주 '케머러 1호기'는 이미 궤도에 올랐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지난 3월 4일 건설허가를 발급했는데, 이는 비경수형 상용 원자로에 대한 40여 년 만의 첫 승인이었다. 이어 4월 23일 원자로 본격 건설에 착수했고, 벡텔이 EPC를 맡아 건설 기간 약 1600명의 인력을 투입한다. 완공 목표는 2031년 2월이다. 이 공급망에는 한국 기업들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원자로 압력용기와 노심 지지 구조물을, HD현대가 원자로 용기를 제작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의 이번 합의는 여기에 참여 폭을 더 넓힌다는 의미다.
The NRC issued Kemmerer 1's construction permit on March 4, 2026 — the first for a commercial non-light-water reactor in over 40 years — with full construction started April 23 and completion targeted for February 2031.
K-나트륨은 어디로 향하나?
SK이노베이션과 테라파워는 국내 규제와 전력계통 여건을 검토해 한국형 'K-나트륨' 사업모델을 구체화한다. 국내 연구·설계기관과 원전 기자재 기업의 참여를 늘려 핵심 설비 공급망을 국내에서 확보하는 방안도 함께 본다. 시선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베트남·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시장 진출도 검토 대상에 올렸다. 빌 게이츠 방한을 계기로 SK·HD현대·두산 등 국내 기업이 테라파워를 중심으로 뭉치면서 'K-SMR 동맹'이 빠르게 형태를 갖추고 있다. AI 전력난이라는 세계적 화두 위에서, 한국 원전 공급망이 새로운 수출 동력을 찾는 국면이다.
SK and TerraPower plan to shape a Korea-tailored "K-Natrium" model while eyeing Vietnam, Indonesia and Malaysia, as SK, HD Hyundai and Doosan coalesce into a K-SMR alliance riding the global AI power crunch.
SK이노의 원전 베팅, 무엇을 노린 승부수인가?
이번 합의를 단순한 에너지 사업 확장으로만 읽으면 절반만 본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의 본업은 정유·석유화학과 배터리다. 그런 회사가 차세대 원전에 다시 힘을 싣는 배경에는 에너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근본부터 재편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탄소 규제가 조여오고 정유 마진의 장기 전망이 불투명해지는 상황에서, 무탄소 전원인 SMR은 SK이노베이션이 '에너지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미래로 이어갈 몇 안 되는 카드 중 하나다. 2022년의 2억5000만달러 투자가 씨앗이었다면, 이번 합의서는 그 씨앗을 실제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주목할 대목은 타이밍이다. 테라파워의 케머러 프로젝트가 NRC 건설허가와 착공이라는 가장 큰 규제 관문을 통과한 직후에 사업 참여를 확대했다는 점이다. 기술적·규제적 불확실성이 가장 큰 초기 단계를 넘긴 시점에 발을 더 깊이 담그는 것은, 리스크를 관리하면서도 상용화 초입의 과실을 놓치지 않으려는 전형적인 후발 참여 전략이다. 이미 두산에너빌리티와 HD현대가 핵심 기자재 공급망에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SK이노베이션은 투자자이자 사업 파트너라는 이중 지위로 밸류체인 상단을 겨냥한다.
결국 이 그림의 진짜 배경에는 AI가 있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빨아들이는 전력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안정적이면서도 유연한 무탄소 전원의 가치가 급등했다. 엔비디아의 벤처 부문까지 테라파워에 투자한 것은 이 흐름을 상징한다. SK이노베이션의 이번 승부수는 원전 회사가 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AI 시대의 전력 병목을 푸는 공급망의 한 축을 선점하겠다는 이야기다. 한국 원전 생태계 전체로 보면, 이는 정체된 내수를 넘어 미국과 아시아로 향하는 새로운 수출 문이 열리는 국면이기도 하다.
SK Innovation's renewed nuclear bet is less about becoming a reactor company and more about securing a slice of the AI-era power supply chain, timed right after Kemmerer cleared its biggest regulatory hurd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