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집행 중단 30년, 인권위 폐지 의정서 가입 촉구
안창호 인권위원장이 사형집행 중단 30년을 앞두고 유엔 사형폐지의정서 가입을 촉구했다. 미집행 사형수 52명과 존치 여론 52.9%가 맞물린 쟁점을 짚었다.
사형 집행 없이 30년을 보낸 나라는 이제 무엇을 결정해야 하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제24회 세계 사형 폐지의 날에 맞춰 안창호 위원장 명의 성명을 내고 유엔 사형폐지의정서 가입 추진을 촉구했습니다. 한국은 1997년 12월 30일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내년이면 집행 중단 30년을 맞습니다. 교정시설에 남은 미집행 사형수는 52명이고 평균 나이는 58.7세입니다. 법률에는 사형이 살아 있고 집행은 멈춘 상태가 한 세대째 이어지는 가운데 존치 여론은 여전히 절반을 넘습니다.

목차
인권위원장의 성명은 지난해와 무엇이 달라졌나?
안창호 위원장은 성명에서 "대한민국은 이미 한세대 가까운 기간 동안 사형 집행 없이 형사사법제도를 운영해왔다"며 사형제 폐지에 관한 입법적·제도적 방향을 검토하고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선택의정서 가입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성명에서는 생명권을 부정하는 모순을 지적하면서도 폐지를 명시하지 않아 인권위 안팎에서 비판이 나왔습니다. 안 위원장은 2012년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존치 입장을 밝힌 전력이 있습니다. 그는 한겨레에 지난해에도 폐지 찬성이었다며 다른 국가기관이 판단할 문제를 직접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고 해명했습니다.
Korea's human rights commission chief has for the first time explicitly urged the government to join the UN protocol abolishing capital punishment, a sharper stance than his 2025 statement.
사형폐지의정서 가입은 왜 번번이 멈춰 섰나?
1989년 12월 채택된 사형폐지의정서는 독일·프랑스·호주 등 92개국이 서명한 국제인권조약입니다. 가입하면 사형 폐지가 조약상 의무가 되므로 국내법 정비가 따라야 합니다. 인권위는 2005년 폐지 의견을 표명하고 2018년 정부에 가입을 권고했지만 외교부와 법무부는 국민 여론과 치안 여건을 이유로 유보해 왔습니다. 국회에서도 1999년 15대부터 사형제도폐지특별법이 열 차례 발의됐으나 아홉 건이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대체 형벌로 거론된 가석방 없는 무기형 역시 법무부가 2023년 형법 개정안을 냈지만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며 함께 사라졌습니다.
Ten abolition bills have been introduced since 1999, none debated in committee, and the proposed alternative of life without parole also lapsed with the last National Assembly.
숫자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나?
국제앰네스티 집계로 2025년 말 기준 전 세계 145개국이 법률상 또는 사실상 사형을 폐지했고 이 중 113개국은 완전 폐지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제2선택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미국·일본·이스라엘뿐입니다. 반대로 집행은 특정 국가에 쏠려 있습니다. 2025년 전 세계 집행은 최소 2,707건으로 44년 만에 최다를 기록했는데 이란 2,159건과 사우디아라비아 356건이 전체의 93%를 차지했습니다. 집행의 46%는 마약 관련 범죄였습니다. 국내 여론은 또 다릅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조사에서 응답자 1,000명 중 52.9%가 제도를 유지하고 필요하면 집행해야 한다고 답했고 현행 미집행 상태 유지는 34.3%, 법률상 폐지는 8.5%였습니다.
While 145 countries have abolished the death penalty in law or practice, global executions hit a 44-year high of 2,707 in 2025, with Iran and Saudi Arabia accounting for 93 percent.
미국에 사는 한인에게 이 논의는 어떻게 닿나?
미국은 사형 존치 27개 주를 두고 흐름이 갈리는 나라입니다. 2026년 8월까지 집행된 23건 중 13건이 플로리다 한 주에서 나왔습니다. 2025년 전체 집행은 47건으로 2009년 이후 가장 많았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정반대 방향입니다. 개빈 뉴섬 주지사가 2019년 3월 집행 유예를 선언하고 산쿠엔틴 교도소의 집행실을 해체한 뒤 사형 선고자 564명이 남은 상태로 집행은 멈췄습니다. 마지막 집행은 2006년 1월입니다. 한국의 사실상 폐지 상태와 캘리포니아의 모라토리엄은 제도를 남겨둔 채 집행만 중단했다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두 곳 모두 법률을 정리하지 않은 유예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를 함께 시험받고 있습니다.
California's 2019 moratorium left 564 condemned prisoners and a dismantled execution chamber, a legal limbo that closely mirrors Korea's de facto abolition.
30년의 유예는 왜 결론이 되지 못했나?
집행이 멈춘 30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실험이었습니다. 극형을 실제로 집행하지 않고도 형사사법 체계와 사회 안전이 유지될 수 있는지를 한국 사회는 한 세대 동안 몸으로 확인했습니다. 안창호 위원장이 이 기간을 두고 "형벌 집행의 유예라는 사실을 넘어선 소중한 자산"이라고 표현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험의 결과가 나왔는데도 제도는 그대로입니다. 여기에 이 사안의 본질이 있습니다. 문제는 사형이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의 논쟁이 아니라 결론을 내리지 않는 상태가 너무 편안해졌다는 점입니다.
유예는 양쪽 모두에게 비용을 치르지 않게 해 주는 선택지입니다. 폐지를 주장하는 쪽은 집행이 없으니 급박함을 느끼지 않고 존치를 주장하는 쪽은 조항이 남아 있으니 물러설 이유가 없습니다. 정치권이 스물일곱 해 동안 법안 열 건을 발의하고도 상임위 논의 한 번 열지 않은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흉악범죄가 보도될 때마다 집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올라오고 그때마다 논의는 뒤로 밀렸습니다. 존치 여론 52.9%라는 숫자는 결정을 미루는 가장 손쉬운 명분이 되어 왔습니다.
그 비용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이고 있습니다. 평균 58.7세가 된 사형수 52명은 집행도 감형도 아닌 상태로 수십 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장기 수용자는 35년째입니다. 이들의 처우를 규율하는 명확한 기준도 없습니다. 법은 사형수라 부르고 현실은 무기수처럼 관리하는 괴리를 교정 당국이 떠안고 있는 셈입니다. 피해자 유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집행을 기다리며 30년을 보낸 유족에게 국가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폐지든 존치든 분명한 선택이 있었다면 적어도 기준은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의정서 가입 논의의 진짜 쟁점은 국제 평판이 아닙니다. 조약에 서명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야말로 가입 논의가 번번이 멈춘 이유이자 동시에 그것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꺼리는 태도는 사형이라는 형벌 자체에 대한 사회의 불안과 정확히 겹칩니다. 오판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회복 불가능한 형벌을 남겨두는 선택도 같은 무게로 따져야 합니다. 30년의 공백을 자산이라 부르려면 그 경험을 법 조문으로 옮기는 작업이 뒤따라야 합니다. 대체 형벌과 피해자 지원 제도를 함께 설계하는 일이 그 출발점입니다.
The 30-year suspension has become a comfortable default that spares both sides the cost of a decision, while 52 aging prisoners and victims' families live in a legal void no one has defin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