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첫 결혼식, 631년 만에 궁이 예식장이 됐다
국립고궁박물관 은행나무 쉼터에서 경복궁 첫 야외 결혼식이 열렸다. 293쌍이 지원해 28쌍이 선정된 고결 사업과 에스토니아 유튜버 마이의 한복 예식, 문화유산 개방 정책을 짚는다.
경복궁 앞마당에서 결혼식이 열린 이유는 무엇인가?
조선의 정궁 경복궁이 창건된 지 631년 만에 궁 권역에서 일반 시민의 결혼식이 처음 치러졌습니다. 10월 2일 국립고궁박물관 은행나무 쉼터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첫 부부는 에스토니아 출신 유튜버 마이(27)씨와 한국인 남편입니다. 국가유산청과 국립고궁박물관이 공간을 무료로 내준 고결 사업의 1호 커플입니다. 293쌍이 지원해 28쌍이 선정됐고 이재명 대통령 부인 김혜경 여사가 현장을 찾아 축하를 전했습니다.

목차
궁궐 공간이 왜 지금 예식장으로 열렸나?
고결은 고궁박물관에서 결혼해를 줄인 이름입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10월 2일부터 11월 8일까지 주말과 공휴일마다 하루 두 차례씩 박물관 앞 은행나무 쉼터를 예식 공간으로 내놓습니다. 대관료는 한 푼도 받지 않습니다. 하객을 위한 피로연장도 함께 무료로 제공하고 사회적 배려 대상 커플에게는 예식비 650만원까지 지원합니다. 문화유산을 유리장 안의 전시물이 아니라 시민의 생활 공간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국가유산청의 기조가 결혼이라는 통과의례와 맞물린 결과입니다. 김 여사는 현장에서 문화유산이 엄숙한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일상에서 친근하게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Korea's National Palace Museum opened its ginkgo-tree courtyard beside Gyeongbokgung Palace as a free wedding venue for the first time, waiving all rental fees and even covering reception space. The initiative reframes heritage sites as living civic space rather than sealed exhibits.
첫 주인공이 에스토니아 유튜버라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나?
마이씨는 구독자 22만명 규모의 유튜브 채널 김치귀신 마이에서 한복과 한국 전통문화를 소개해 온 방송인입니다. 2025년 전국춘향선발대회에서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스 춘향 현(賢)에 선정됐고 지금은 한복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경복궁이 한복을 처음 입어본 장소이자 남편과 첫 데이트를 한 곳이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타넬 셉 주한 에스토니아 대사도 축사를 맡아 자리를 지켰습니다. 선정자 구성 자체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다문화가정과 국제결혼 커플을 비롯해 군인·소방·경찰 종사자, 어려운 여건을 딛고 올라선 청년, 문화유산과 예술 분야 종사자가 28쌍 안에 함께 들어갔습니다.
The first bride was Mai, a 27-year-old Estonian YouTuber with 220,000 subscribers who became the first foreigner named a Miss Chunhyang laureate in 2025. The 28 selected couples deliberately include multicultural families, first responders and heritage workers.
숫자는 어떤 압력을 보여주나?
10.5대 1이라는 경쟁률은 궁궐 마당이 예뻐서만 생긴 수치가 아닙니다. 2026년 2월 기준 결혼서비스 전국 평균 비용은 2139만원입니다. 예식장 대관료만 떼어 봐도 전국 평균 439만원, 수도권 606만원, 서울 강남권 750만원 선입니다. 최근 2년 안에 결혼한 신혼부부 1000명이 치른 평균 예식홀 비용은 1460만원으로 2021년 896만원에서 63% 뛰었습니다. 결혼식을 굳이 치르고 싶지 않은 이유로 비용 부담을 꼽은 응답은 25.2%였습니다. 공공 공간으로 눈을 돌리는 흐름은 이미 통계에 찍혀 있습니다. 서울시 공공예식장 이용은 2023년 75건에서 2024년 155건, 2025년 280건을 거쳐 올해는 예약을 포함해 548건까지 늘었습니다. 서울시는 2030년까지 공공예식장을 65곳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With average Korean wedding service costs at 21.4 million won and hall rentals alone reaching 7.5 million won in Gangnam, demand for public venues has surged. Seoul's public wedding venue bookings jumped from 75 in 2023 to 548 this year.
2027년에는 어디까지 확대되나?
국립고궁박물관은 2027년 봄과 가을에 걸쳐 야외 결혼식을 총 80회로 늘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올해 28쌍의 세 배에 가까운 규모입니다. 고궁을 향한 수요 자체가 빠르게 커지는 중입니다. 지난해 경복궁을 찾은 외국인 관람객은 278만3998명으로 전년 202만7087명보다 37.3% 늘었습니다. 서울 4대 고궁 전체로는 409만7930명을 기록해 400만명 선을 처음 넘겼습니다. 한복 차림으로 경복궁·창덕궁·덕수궁·창경궁과 종묘에 입장한 사람은 207만명을 넘겼습니다. 2022년 54만명대와 견주면 3년 사이 260% 이상 불어난 수치입니다. 남은 과제는 분명합니다. 예식 소음과 관람 동선이 겹치지 않게 관리하는 일, 보존 원칙을 흔들지 않으면서 활용 범위를 넓히는 선 긋기가 확대의 조건으로 남습니다.
The museum plans to expand to 80 outdoor ceremonies across spring and autumn 2027, nearly triple this year's 28. Foreign visitors to Gyeongbokgung rose 37.3 percent last year to 2.78 million, making crowd flow and preservation limits the key constraints.
이 결혼식을 정책으로 읽으면 무엇이 보이나?
경복궁 첫 결혼식은 훈훈한 미담으로 소비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서로 다른 세 갈래의 정책이 한자리에서 만난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첫째는 문화유산을 보존 대상에서 생활 공간으로 옮기려는 국가유산청의 방향입니다. 둘째는 치솟는 예식 비용 앞에서 공공이 공간을 직접 공급하는 결혼 지원 정책입니다. 셋째는 다문화가정을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평범한 구성원으로 무대 한가운데 세우는 상징 전략입니다. 은행나무 아래 차려진 한 번의 예식에 이 세 가지가 포개져 있습니다.
눈여겨볼 대목은 선정 명단의 구성입니다. 다문화가정과 국제결혼 커플, 군인과 소방·경찰 종사자, 어려운 여건을 딛고 올라선 청년, 문화유산과 예술 분야 종사자. 추첨으로 뽑았다면 결코 나오지 않았을 조합입니다. 공간을 누구에게 내주느냐는 선택 자체가 메시지라는 것을 기획자들이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궁궐이라는 공간이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던 자리에서 공동체가 누구를 환대하는지 보여주는 무대로 성격이 바뀌는 지점입니다.
물론 규모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28쌍은 한 해 혼인 건수에 비하면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 숫자입니다. 경쟁률 10.5대 1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2027년 80회로 늘린다 해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결국 이 사업의 진짜 성과는 몇 쌍을 결혼시켰느냐가 아니라 다른 유산 기관들이 자기 마당을 어떻게 볼 것이냐를 바꿔 놓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전국의 고택과 서원, 지방 박물관 마당이 같은 질문을 받기 시작한다면 28쌍은 숫자 이상의 일을 한 셈입니다.
경계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유산 공간의 활용이 홍보 성과로 환산되기 시작하면 보존 원칙은 가장 먼저 양보되는 항목이 됩니다. 소음과 동선, 시설 부하를 재는 기준이 확대 속도보다 앞서 마련돼야 합니다. 궁궐을 열었다는 사실보다 어떻게 열었는지가 다음 평가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Beneath the feel-good imagery, this single ceremony sits at the intersection of three policies: heritage reframed as civic space, public supply of wedding venues against soaring costs, and multicultural families placed at the symbolic center. Its real test is not the 28 couples but whether other heritage institutions follow, and whether preservation standards keep pace with expan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