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진 집 앞 확성기, 문체부 장관이 경찰에 보호 요청
영화 암살자(들) 역사 왜곡 논란이 유해진 자택 시위와 광고 불매로 번지자 최휘영 문체부 장관이 경찰에 엄정 집행을 요청했다. 사전 검열 논란과 200만 흥행을 짚는다.
영화 한 편을 둘러싼 논쟁이 왜 배우 집 앞 확성기까지 갔나?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쟁이 작품 비평의 영역을 벗어났습니다. 10월 4일 보수 성향 단체가 주연 배우 유해진의 서울 성북구 자택 앞에서 집회를 열었고 그가 모델로 나선 기업 광고에는 불매와 모델 교체 요구가 쏟아졌습니다. 하루 뒤인 5일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경찰청 등 관계 당국에 영화 관계자와 출연 배우에 대한 안전 조치를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장관은 상영 중단 요구에는 헌법이 금지한 사전 검열이라며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같은 기간 이 영화는 개봉 11일 만에 누적 관객 200만명을 넘겼습니다.

목차
암살자(들)은 어떤 영화이고 무엇이 논란이 됐나?
허진호 감독이 연출하고 유해진·박해일·이민호가 출연한 암살자(들)은 9월 23일 개봉했습니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벌어진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와 육영수 여사 사망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첫 한국 상업영화입니다. 기자와 경찰의 시선을 따라 공식 수사 결과의 빈틈을 추적하는 구성인데 극 중 일부 인물이 당시 한일 외교 관계를 근거로 중앙정보부 윗선의 개입 가능성을 입에 올리는 장면이 발화점이 됐습니다. 제작진은 9월 28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창작적 상상이며 특정한 정치적 목적으로 만든 영화가 아니라는 입장을 냈습니다.
Assassins, directed by Hur Jin-ho and released on September 23, is the first Korean commercial film to directly dramatize the 1974 shooting that killed First Lady Yuk Young-soo. A scene suggesting possible KCIA involvement triggered accusations of historical distortion.
장관은 왜 상영 중단 요구를 사전 검열이라고 불렀나?
최 장관이 5일 SNS에 올린 글의 제목은 영화에 대한 평가는 자유이지만 창작자에 대한 신변 위협은 민주주의의 파괴입니다였습니다. 그는 작품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정부가 사전에 개입하거나 행정력으로 재단하라는 요구는 헌법이 금지한 사전 검열의 시대로 돌아가라는 위험한 요구라고 못 박았습니다. 대신 명예훼손이나 법률적 문제가 있다면 상영 이후 민사 소송이나 형사 절차를 통해 사법부의 판단을 구하면 될 일이라며 구제 경로를 사법 영역으로 돌렸습니다. 역사적 해석을 놓고 벌어지는 비판과 토론 자체는 민주 사회에서 건강한 일이라는 단서도 함께 달았습니다. 정부가 콘텐츠 내용 자체에는 손대지 않되 창작자의 물리적 안전은 공권력으로 지키겠다는 이중 선언인 셈입니다.
The culture minister drew a sharp line: criticizing a film is free speech, but demanding the government pull it from theaters would revive the unconstitutional pre-censorship era. Legal grievances, he said, belong in court after release, not in an administrative veto before it.
숫자로 보면 이 사태는 어떤 모습인가?
흥행과 압박이 동시에 치솟았습니다. 암살자(들)은 개봉 4일 만에 100만명, 11일 만에 200만명을 넘겨 10월 3일 기준 누적 204만5499명을 기록했습니다. 2026년 개봉작 가운데 200만 고지를 밟은 아홉 번째 작품입니다. 반면 관객을 직접 만나는 자리는 차례로 사라졌습니다. 제작사는 10월 2일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참석과 야외무대인사를 취소했고 2주차 무대인사 일정도 접었습니다. 국민의힘은 싱가포르국제영화제에 개막작 선정을 철회해 달라는 서한을 당 차원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광고주도 흔들려 키움증권은 유해진을 앞세운 캠페인을 종료했고 버거킹은 광고 영상의 댓글창을 닫았습니다. 10월 3일에는 한국영화감독조합과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이 연이어 성명을 내고 신상 털기와 생업 위협을 멈추라고 요구했습니다.
The film crossed 2.04 million admissions in 11 days, the ninth title to pass the two-million mark in 2026. Meanwhile its Busan festival appearances were scrapped, two advertisers pulled back, and directors' and producers' guilds issued statements against doxxing.
이번 국면은 어디로 흘러갈까?
전례는 있습니다. 2005년 영화 그때 그사람들은 개봉 전 유족이 낸 상영금지 가처분에서 법원이 다큐멘터리 영상 세 장면을 삭제하라는 결정을 내렸고 2006년 본안에서는 명예훼손을 인정해 1억원 배상 판결이 나왔습니다. 다만 법원은 상영금지 청구는 기각했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고인·유족의 인격권이 충돌할 때 법원이 상영 자체를 막는 데는 신중했다는 뜻입니다. 이번 사안도 결국 법정으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유해진 소속사 VAST엔터테인먼트는 비방과 허위 사실, 악의적 인신공격 자료를 모으고 있다며 가능한 모든 조치를 예고했습니다. 변수는 광고 시장입니다. 모델 리스크가 현실화한 선례가 쌓이면 앞으로 민감한 역사 소재 영화에 상업 광고 의존도가 높은 배우를 캐스팅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검열은 법으로 사라졌지만 계약서와 광고 단가를 통해 돌아올 수 있습니다.
A 2005 precedent involving The President's Last Bang suggests courts hesitate to block screenings outright even when they find defamation. The sharper long-term risk is commercial: if advertiser backlash becomes routine, casting bankable actors in politically charged historical films gets harder.
검열이 사라진 자리를 무엇이 대신하고 있나?
이번 사태에서 가장 눈여겨볼 지점은 상영 중단을 요구하는 쪽조차 정부에 금지 권한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압박의 방향이 영화가 아니라 사람을 향했습니다. 극장 스크린을 내릴 수 없으니 배우의 광고 계약을 내리게 하고 영화제 개막작 자리를 거두게 하고 집 앞에 확성기를 세웁니다. 법적 검열은 1996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평판과 계약이라는 사적 지렛대가 채우고 있는 셈입니다. 최휘영 장관이 상영 중단 요구는 사전 검열이라며 선을 긋는 동시에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한 것은 이 구조를 정확히 읽은 대응으로 보입니다. 내용에는 개입하지 않되 사람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압력은 공권력이 막겠다는 분리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광고주가 캠페인을 조기에 접는 것은 불법이 아니고 댓글창을 닫는 것도 기업의 판단입니다. 키움증권이 계약은 유지하면서 캠페인만 종료한 선택은 양쪽 눈치를 모두 본 절충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절충이 반복될수록 캐스팅 단계에서 계산이 달라진다는 데 있습니다. 민감한 현대사를 다루는 기획은 광고 의존도가 낮은 배우를 찾게 되고 제작비 조달도 까다로워집니다. 누구도 금지하지 않았는데 만들어지지 않는 영화가 늘어나는 방식입니다.
흥행 숫자가 이 구도를 가리기도 합니다. 11일 만에 200만명을 넘긴 성적만 보면 논란이 오히려 관객을 불렀다고 해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무대인사와 부산국제영화제 일정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나온 수치라는 점을 함께 봐야 합니다. 제작사는 정상적인 마케팅 동선을 잃었고 배우는 공개 석상에 서지 못했습니다. 다음 작품을 기획하는 사람이 보는 것은 200만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치른 비용일 가능성이 큽니다. 역사 해석을 둘러싼 논쟁은 민주 사회의 자산이지만 그 논쟁이 개인의 생활 반경을 겨냥하는 순간 남는 것은 토론이 아니라 위축뿐입니다.
The demand to pull the film was never legally viable, so the pressure moved from the screen to the people behind it: ad contracts, festival slots, and a megaphone outside an actor's home. Censorship ended by law in 1996, but reputational and contractual leverage can reproduce its effect without a single official b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