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알리에 9300억 과징금…DSA 사상 최대
EU가 알리익스프레스에 5억5000만 유로(약 9300억원) 과징금을 부과했다. 디지털서비스법 시행 이후 최대 규모로, 위조품·불법 상품 유통 방치가 이유다. 알리는 항소 방침을 밝혔다.
EU는 왜 알리익스프레스에 9300억원을 물렸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7월 20일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에 5억5000만 유로, 약 93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디지털서비스법(DSA) 시행 이후 나온 제재 가운데 가장 큰 금액이다. 위조 의류와 신발, 안전 기준에 미달하는 어린이 장난감, 유해 화장품이 플랫폼에서 대량 유통되는데도 알리익스프레스가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고 줄이지 않았다는 것이 집행위 판단이다. 알리익스프레스는 과도한 처분이라며 항소하겠다고 밝혔고, 10월 20일까지 시정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목차
디지털서비스법은 어떤 무기를 쥐고 있나?
DSA는 월 이용자 4500만 명을 넘는 초대형 온라인 플랫폼에 자사 서비스가 만들어내는 시스템적 위험을 스스로 진단하고 완화할 의무를 지운다. 이번 제재의 근거가 된 조항은 위험 평가를 규정한 34조와 완화 조치를 규정한 35조다. 개별 위조품 한 건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위조품이 계속 올라올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방치했느냐를 따진다는 뜻이다. 위반이 확인되면 전 세계 연 매출의 최대 6%까지 물릴 수 있어, 규제 당국이 쥔 지렛대는 상당히 무겁다.
The DSA targets systemic risk management rather than individual listings, with fines reaching up to 6% of global annual turnover.
집행위가 지적한 구조적 결함은 무엇인가?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대목은 인력과 시간이었다. 집행위는 알리익스프레스가 불법 가능성이 있는 상품을 검토할 인력이 충분한지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다고 봤다. 상품을 걸러내는 담당 직원에게 EU 기준 충족 여부를 판단할 시간이 수십 초밖에 주어지지 않은 경우도 확인됐다. 판매자들이 이 검수 체계를 손쉽게 우회해 상품을 올린 뒤, 나중에야 위조품으로 적발돼 내려가는 일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신고가 접수된 뒤에도 수백만 건의 위조 상품이 여전히 판매되고 있었다는 점 역시 제재 수위를 끌어올린 요인으로 꼽힌다.
Investigators found screening staff had mere tens of seconds per product, allowing sellers to bypass review at scale.
숫자로 보면 이번 제재는 어디쯤인가?
5억5000만 유로는 달러로 약 6억2900만 달러다. 직전 최고 기록이던 테무의 2억 유로를 두 배 넘게 뛰어넘었다. 집행위는 5월 28일 테무에 불법 상품 유통 위험 관리 실패를 이유로 2억 유로를 부과했고, 지난해 12월에는 투명성 의무 위반으로 X에 1억2000만 유로를 물렸다. 2월에는 무한 스크롤·자동 재생 등 중독적 설계를 문제 삼아 틱톡에 예비 판단을 통보했고, 같은 달 쉬인에 대한 정식 조사도 열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유럽에서 아마존을 제치고 최대 온라인 마켓플레이스에 오른 상태이며, 알리바바 국제 소매 부문 2026 회계연도 매출은 1177억 위안, 약 171억 달러로 전년 대비 9% 늘었다.
At €550 million, the penalty more than doubles Temu's €200 million and dwarfs the €120 million levied on X.
한국 시장에는 어떤 파장이 오나?
공정거래위원회는 개정 전자상거래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7월 21일 발효시켰다. 전년 매출 1조원 이상이거나 최근 3개월 국내 월평균 이용자가 100만 명을 넘는 해외 사업자는 2027년 1월까지 국내 대리인을 지정해야 한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쉬인이 모두 대상이다. 반복 위반 시 과징금은 1회 재발에 최대 50%, 4회 이상이면 최대 100%까지 가중된다. 특허청과 관세청은 통관 단계 국경 조치를 강화해 가품 직구를 걸러내기로 했다. EU가 매긴 9300억원이라는 가격표는 국내 규제 집행에도 참고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Korea's revised e-commerce rules took effect on 21 July, requiring AliExpress, Temu and Shein to name local agents by January 2027.
이 제재는 결국 무엇을 겨냥하고 있나?
이번 결정을 위조품 단속으로만 읽으면 절반만 본 것이다. 집행위가 문제 삼은 지점은 플랫폼에 올라온 가짜 티셔츠 몇 건이 아니라, 가짜 티셔츠가 계속 올라올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검수 구조 그 자체였다. 담당자에게 수십 초를 주고 상품 하나의 안전 기준 충족 여부를 판단하게 했다는 대목이 이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초저가와 물량 회전을 축으로 삼은 사업 모델에서 검수는 속도를 갉아먹는 비용이고,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인력과 시간을 배분하면 그 결과는 통계적으로 예측 가능하다. 유럽 규제 당국은 바로 그 예측 가능한 결과를 사후의 사고가 아니라 사전의 선택으로 규정했다.
기업 입장에서 셈법이 달라지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글로벌 플랫폼에게 규제 리스크는 적발된 건수에 매기는 벌금, 다시 말해 영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동비에 가까웠다. 위조품이 걸리면 내리고, 과징금이 나오면 납부하고, 사업은 계속 굴러갔다. 그런데 위험 평가 체계 자체를 문제 삼고 전 세계 매출의 6%까지 물릴 수 있는 규정을 들이대면, 리스크는 변동비가 아니라 사업 구조를 다시 짜야 하는 고정비로 바뀐다. 알리익스프레스가 금액의 과도함을 앞세워 항소 의사를 밝힌 배경에도 이 구조 변경에 대한 경계가 깔려 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한국 기업과 소비자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대리인 지정을 의무화하고 반복 위반 과징금을 최대 두 배까지 가중하기로 한 것은 방향으로 보면 EU와 같은 문법이다. 해외 사업자라는 이유로 집행이 미치지 않던 공백을 메우겠다는 것이다. 다만 EU가 인력 배치와 검수 시간까지 파고들어 구조를 문제 삼은 것과 비교하면, 국내 제도는 아직 창구를 만들고 제재 수위를 높이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결국 관건은 조사 역량이다. 플랫폼 내부의 위험 관리 체계를 뜯어볼 수 있어야 구조를 겨냥한 제재가 가능해진다.
국내 이커머스 업계에는 규제 형평이라는 오래된 숙제가 다시 돌아온다. 같은 안전 기준과 검수 의무를 지고 경쟁하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초저가 플랫폼이 누려온 비용 우위의 일부는 사라진다. 반대로 집행이 느슨하면 국내 사업자만 규제를 부담하는 역차별 구도가 굳어진다. 유럽이 9300억원이라는 가격표를 먼저 붙인 지금, 한국 규제 당국이 어느 쪽 경로를 택하는지가 향후 몇 년간 국내 유통 시장의 경쟁 조건을 좌우할 것이다.
The fine targets AliExpress's review architecture, not individual listings — turning regulatory risk from a variable cost into a structural one, with Korea's enforcement capacity now the open question.